김승윤 Nov 30, 2018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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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이상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위 문구로 시작되는 이상의 단편 날개는 초입부의 강렬함으로 기억되는 소설이다. 그 유명세에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1독은 처참한 실패였다. 먼저, 아무 생각 없이 책으로 유인했던 문구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에 대한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런대로 넘어간 후 다음 문단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문단과 문단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짧은 단편이지만 절반 정도까지 읽다가 포기, 반의반까지 읽다가 포기를 했다. 그 후 저자 이상과 날개에 대한 공부를 결심하였다.

 

요즘 교과서에 이상의 날개가 실려 있나 보다. 문학을 공부하던 고등학생 때 수능 대비 주입식 교육으로 포인트만 딱딱 짚어가며, 시간 대비 능률은 좋았지만 아름답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참고자료들이 즐비하다. 덕분에 이상과 날개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일반론적으로 이해되는 날개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국어 선생님의 정리로 먼저 날개를 이해해보자. 날개는 내용의 난해함과 형식의 파격성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건은 논리적 전개에 의한다기보다 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데, 이는 현대인의 분열된 자아의식과 고독감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기술하는 심리 소설의 특성에 해당한다. 책에서 사건은 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므로 사건 자체도 뚜렷하지 않고 사건들 사이의 연계성을 찾기 힘들다.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인간의 의식을 조각조각 분리하지 않고 마치 강물이 흐르듯이 연속적으로 서술하는 소설의 기법이다.

 

미치광이의 소설 아니 끄적임 인줄 알았다. 하찮아 보이는 그림이지만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이름값이 있다면 단숨에 수억, 수십억을 호가하는 명작으로 탄생되는 것처럼 본 소설도 이상의 이름값이 없다면 정상적 사고가 단절된 사람의 습작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이상하다. 물론 나의 내공 부족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날개를 실었던 조광지의 편집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품었다고 들었다. 날개는 비슷한 계열의 천재인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의한 의식의 흐름 기술이 접목된 글이다.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날개 작성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자. 1930년대 경성은 백화점, 영화관, 카페, 전차, 공원 등 근대적 도시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근대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지식인들은 도시적 근대적 삶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들의 궁핍한 경제력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무기력했다. 대 우울의 시대였던 것이다. 지식인 실업률은 심각했으며 소비적 삶은 불가능하였고 즐기는 삶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첫 번째 배경으로 생각된다. 근대 교육을 통해 천재라고 할 만한 신지식인 계층이 등장하였지만 그들은 머리에 지식의 무게를 조금 더한 것일 뿐이다. 새로운 변화는 지식의 도입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로의 경제체제 변화도 있었다. 돈이 있다면 즐길 것이 많았고, 소비를 통해 개인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이 없던 지식인들은 집에서 꼼짝없이 있을 뿐이다. 박제가 된 것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두 번째 이유를 찾아보자. 주인공은 유곽에서 일하는 아내의 일과 시간에 아내의 방에 갈 수가 없다. 아내의 규율을 지키면 그녀는 돈도 주고 밥도 준다. 아내의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크게 혼난다. 무일푼인 주인공은 돈을 받을 수도 없다. 규율과 물질에 박제되어 버린 것이다.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상 속 형이상학적 이상만 높아지는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의 머릿속은 끝도 모를 어둠속으로 추락한다. 변화된 사회 및 환경적 요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애써 무시한다. 어려운 단어로 머릿속만 가득채운 지식인의 처절한 파멸이다. 어떤 이의 생각과 행동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우연히 다음 시대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진 것일 뿐, 현 세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성장의 시대가 종료된 듯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큰 포부를 품는 것은 무모한 것으로 느껴진다. 식민지 시대와는 또 다른 고통의 시대다. 가파른 성장의 시대를 지나 선진국으로서 다듬어지고 성숙해지는 시기라 하겠지만, 이 시대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있다. 큰 꿈을 꿀 수 없으니 적은 돈으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YOLO를 부르짖는 현 시대의 지식인들과 이상의 시대에 약간의 동질성을 느낀다.

 

보편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날개의 마지막 구절을 적으며 마무리한다. ‘내가 언제 날아본 적은 있던가하고 자문해본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