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Dec 02, 2018 02:21:20
0 5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2000년대 초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같은 반에는 지적장애인 친구가 한명 있었다. 인근에 특수학교가 없었던 사정으로 일반학생과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들어야했던 그 친구는 수업에도 학급 분위기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늘 혼자 시간을 보냈다. 외로워보이는 그 친구가 딱해서였을까? 아니면 이유모를 영웅심리였을까? 나는 그 친구를 짓굳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지키고 싶어 한동안 밥도 같이 먹고 다가가 어울려주었다. 그 친구와 어느정도 친해졌다고 여길 무렵부터, 그 아이를 향한 장난은 어느새 나에게 향해지기 시작했다. 한 때 나의 친구였던 아이들조차 나를 놀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친구들를 향한 배신감과 혼자가 될거라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초등학생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적장애인 친구를 버리듯이 멀리하였고, 얼마 뒤 그 아이는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버렸다. 그 아이가 전학을 가게된 이유가 온전히 나 때문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면서도 죄책감을 지울 수 없어 한동안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나의 기억 속에서 잊어져갔다.

  섬잣나무들이 울창한 시로산의 가을 막바지, 도쿄에서 온 학교 선생 구니키다도 내가 그 친구를 만났듯이 순수한 시골 소년 로쿠조를 만났다. 로쿠조는 백치인 어머니를 닮아 백치였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들 당하다가 학교를 그만둔 이후 로쿠조는 나무와 새들을 벗삼아 자연 속에서 자유로이 살아왔다. 로쿠조는 다른 것들보다도 유난히 새에, 특히 까마귀에 관심이 많은 듯하였다. 그래서일까, 구니키다는 맨손으로 이 미터가 넘는 돌담을 기어 올르고 나무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로쿠조를 보며 구니키다는 마치 한마리의 새를 보는 듯하다 생각했다.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시로산의 숲속을 날아다니는 한마리의 까마귀.

  로쿠조의 어머니로부터 로쿠조의 교육을 받은 구니키다는 로쿠조와 일상에서 다양한 일을 겪는다. 구니키다는 로쿠조에게 수의 관념을 가르치기 위해 돌멩이, 계단, 과자 등 사용해보았지만, 전혀 소용히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 숲속에서 나무가지를 주워오는 소녀들에게 짓굳은 장난을 치는 로쿠조를 잡아 어머니에게 보내 호되게 혼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어느날은 오래된 성터 돌담 위에 앉아 민요를 부르는 로쿠조를 보며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된 미술 작품을 본듯 그 모습을 감상했다. 그렇게 구니카다는 로쿠조를 점점 더 사랑하기 시작했고, 한명의 백치가 아닌 천사로, 순수한 자연의 자식으로 보기 시작한다.

  구니키다와 로쿠조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로쿠조가 늦은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어느날 로쿠조는 돌담 아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구니키다는 로쿠조가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어 돌담에서 뛰어내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로산 북쪽에 만들어진 로쿠조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로쿠조의 어머니는 함께 무덤에 찾아간 구니키다에게 물었다. 백치인 아들에게는 험한 세상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을거냐고... 구니키다는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채 머뭇거리는 동안 한마리의 까마귀가 무덤가에 날아들었다. 구니키다도 로쿠조의 어머니도 아무런 말 없이 까마귀의 날개짓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설을 읽고 로쿠조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내 어린시절 지적장애인 친구가 떠올랐다. 그 아이가 학교를 떠난 이후로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 삶이 거칠고 힘든 길이었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한다. 로쿠조가, 그리고 지적장애인 친구에게 사회가 어려웠던 이유는 그들이 무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잘못이고, 그들을 품어줄 마음은 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는 방관자들의 잘못이다.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로쿠조가 뛰어내렸던 돌담처럼, 우리의 마음의 담이, 그리고 사회의 진입장벽이 순수하고 연약한 아이들을 사지로 모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까지 충분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지적장애인 친구를 버렸던 비겁자인 나에게는 다른 사람을 비난할 권한도 없고, 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훌륭한 솔로션이나 해결방안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나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나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들의 날갯짓을 밀어주는 바람과도 같은 응원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