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7711 Dec 03, 2018 10: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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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드립의 기술 > - 신상훈

 

- 이 승 환 -

 

 

   애드립(ad lib)임의로라는 뜻이 있는 라틴어인 ‘ad libitum“의 줄임말이다. 주로 재즈의 즉흥적인 독주나 영화, 연극, 공연 등에 출연한 배우가 갑자기 흥에 겨워서 혹은 영감을 얻거나 대사를 잊었을 때 대본에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내뱉는 것을 말한다현대 인터넷 문화에서는 애드립이 즉흥적인 발언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드립이라는 은어로 변형되었다. 예컨대 ○○에 대한 농담을 하다. “와 같은 긍정적인 의미의 문장이나 ○○에 대해 막말을 하다. “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 등의 수많은 표현을 모두 ○○드립을 치다. “로 바꾸어 표현할 정도로 드립은 아주 범용적인 표현이 되었다.

   물론 이 책이 쓰인 십여 년 전인 2007년에는 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유머러스한 사람은 여전히 인기 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대본이 정해져 있는 연극이나 드라마는 조연의 애드립이 극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양념의 역할을 하지만, 각본이 없는 우리네 인생은 애드립을 잘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애드립은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단 한 번에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서먹서먹한 사람 간의 장벽도 단숨에 허무는 강력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흡인력이 있다그러한 맥락에서 코미디일번, 폭소클럽의 대본을 집필해온 방송작가인 저자가 2017년에 이 책을 다시 쓴다면 아마 ‘()드립의 기술이라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상황을 유머로 바꾸어 넘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심는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원래 애드립이라는 게 단단히 대비하고 있어도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톡 쏘는 맛처럼 청량한 유쾌함을 주기 때문에 이 책은 역시나 제목에 걸맞게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었다. 이 책은 총 네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애드립의 필요성과 그 힘에 관한 이야기로 운을 뗀다. 이어서 애드립의 테크닉, 테크닉을 활용할 수 있는 실전 법칙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는 하나의 키워드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애드립의 사례를 늘어놓으며 글을 마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애드립은 순발력이 결정하기 때문에 선천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시적소(適時適所)에 송곳과 같이 애드립을 날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달변가의 인상을 심어줄 뿐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이기 때문에 멋있는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임현식, 김제동, 하일성, 자니 윤 등의 사례를 보면서 우연히 상황에 맞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애드립은 없고, 미리 준비하고 외우고 익힌 노력이 타이밍을 맞추어 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잘 준비된 말이 비로소 애드립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애드립은 부단한 연습의 결과로 나오는 산물이며 꾸준히 준비하는 자에게만 허락된 결실이라고 한다. 애드립으로 익히 알려진 개그맨 김제동 씨는 소재 거리가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을 지녔고, 개그맨 신동엽 씨는 하루에 7개의 종이 신문을 읽으며 어떻게 말하면 익살스럽게 보일지 고민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애드립으로 상대방에게 인상을 심어준 적이 있었다. SK하이닉스 장학생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볼 때였다. 당시에 주위에서 혹시 모르니까 1분 자기소개를 준비해가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고, 이에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는 문장 몇 개를 엮어서 1분 분량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면접이 시작되고 역시나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면접관의 말에 준비한 대사를 읊으려고 하는 순간 불현듯 진부하게 남들과 비슷한 형식으로 말해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기 싫다. 잊히지 않을만큼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겼다. 그날은 우연히도 내 생일 전날이었고, 미리 준비해간 자기소개에 생일선물을 담아 이렇게 나를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KEPSI 지원자, 내일이 생일인 이승환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면접을 저의 26번째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겠습니다. (중략)반도체 공학은 제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선물꾸러미 같아 보였고, 앞으로 이런 선물상자를 계속 열어보고 싶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나의 자기소개를 들은 면접관들은 자기소개서에 쓰인 인적사항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경직된 면접장의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졌다. 덕분에 훈훈한 분위기에서 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중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는 회사나 단체에서 갈등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모두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특정한 테두리 안에서 수많은 구성원과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다 보면, 여러 가지의 형태의 불편한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에 준비된 애드립이 갈등때문에 힘들거나 서먹서먹한 상황에 미리 앞장서있다면, 모두가 함께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는 다음 발걸음을 마련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