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글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


- 김연지 저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글은 더욱더 그렇다. A4용지에 10포인트 크기로 2~3장 분량의 글을 매달 쓰기 시작한 지 거의 4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매번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떤 날은 하얀 모니터 위에 깜빡이는 커서만 보면서 한 시간 이상 아무것도 적지 못할 때도 있었고, 글을 중간 이상 써 내려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지웠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쓸 때 가장 버거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요즘 이슈가 되는 여러 가지 일 중 하나를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찾아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 내려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글을 시작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사건이라도 그것이 내 마음을 충분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주제로 글을 쓰지 못한다. 그렇게 글을 시작했다가는 글의 중간부터 갈피를 잃을 것이고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의 주제를 잘 선택해야 한다. 주제를 선택하는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주제가 내 감정을 요동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감정이 흔들리고, 그 주제에 몰입하고 집중할수록 글이 쉬이 써진다. 쓰고 나서 내 글을 다시 읽어도 은은한 감동이 느껴진다. 그 주제에 대해 내 감정이 요동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진정성 있고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반복적인 글쓰기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내 감정을 흔들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작은 소망일 뿐만 아니라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감정이 굳어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발버둥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대다수의 시간을 연구실과 기숙사에서 보내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접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일상생활에서는 내 마음과 감정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라도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여행을 간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최근의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요동치는 무언가가 있으면 잊지 않고 기록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글 쓰는 것에 대한 내공이 쌓인다.
 
  고작 A4 용지 2~3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특히,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어디론가 여행 갔을 때만큼이나 느껴지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이 작가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뇌를 했기에 이런 글이 나오는 걸까. 존경스러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마음 한쪽에는 그 힘듦을 같이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김연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이다. 대학에 다녔을 때 친했던 후배가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친구가 올렸던 글에 좋아요를 눌렀고 우연히 그 글을 보게 되었다. 강렬했던 첫 문장은 나를 글로 이끌었고, 독특하지만 읽기 쉬운 문체 덕분에 그녀가 쓴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은은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때의 그녀는 스무 살 초반의 풋풋한 대학생이었음에도 그녀의 글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감동적인 글은 읽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그 용기 덕분에 일면식도 없는 그녀에게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했고, 글을 잘 읽었다고, 앞으로도 좋은 글을 올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에게 답장이 온 뒤로부터 나는 그녀의 팬이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여행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간대에도 속하지 않는 창공의 시간처럼, 어느 곳에도 물들지 않은 이방인이 되기 위해. 그리하여 일상의 반복적인 행위들이 가하는 마취에서 잠시나마 깨어있기 위해. 다치지 않고서야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우리가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안녕을 묻기 위해. 언제 생긴 지도 모를 생채기들을 돌보며 생의 유한성은 다시금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고,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좀 더 잘 살고 싶어질 것이다. p. 15
 
  이후 그녀는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글을 썼고, 작년에 독립출판물 <문득 흔들리고 부서질 때>를 거쳐 올해 하반기에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행을 하고 글을 쓴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감정이 굳어지지 않으려고 여행을 가고 책을 읽으며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상대방을 바라볼 때 상대방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 때문에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김연지 작가의 글이 내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자간과 문장 사이로 문득 보이는 작가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닮아서였을까.
 
  바다 뒤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꼭 나의 스물셋이 저물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휴학을 하지 않은 여대생이라면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있어야 할 나이. 자신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게 어른의 기준이라면, 어른을 목전에 두고 있어야 할 나이. 무수한 길이 놓여 있으나 정작 선택지는 제한적인 나이에서 어느 한 가지 길을 고르는 것은 종점을 모르는 버스를 잡아타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과연 내 삶의 노선은 어디를 지나가게 될까. 어디에 닿아 있을까. 사는 일도 여행처럼 종점은 생각하지 않고 매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언제든 끌리는 곳에서 내려 아무 버스나 갈아타도 안전할 수 있다면, 이대로 목적지 없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살만할 것일까. p. 23
 
  또한, 글의 중간마다 마주칠 수 있는 고민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닮아 있다. 문장 사이로 비치는 작가의 불안함이 오히려 나에게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서로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 때 공감과 위안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이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를, 그리고 같이 책을 읽는 무수한 독자들을, 그리고 같은 감정을 느꼈던 작가를 마음속으로 위로할 수 있었다.
 
  때로는 짧고 때로는 긴 만남이 일어나고, 이어지다, 마침내 헤어지는 순간에는 오래 전 내몰았던 허무와 우울이 잠시 찾아오긴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말이에요. 잠시라도, 아주 잠시라도 맥이 포개어지던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나에게 변화를 준 것인데, 이 맥은 죽는 날까지 계속하여 뛸 텐데, 우리는 서로의 부분을 아주 작게나마 간직하고 살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요. 그것만으로도 만남은 충분한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p. 115
 
  외로움과 불안감이 글 너머로 느껴지지만, 그것들은 작가를 절망에 빠뜨리거나 낙담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감정들은 타인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여전히 단단해지지 못한 채로 돌아왔지만 여렸기에 여린 것을 알아볼 수 있었으니 다행입니다. 이 세상에선 홀로 단단해지는 것보다는 함께 물러지는 편이 더 견디기 좋다는 걸 배웠습니다.’라는 에필로그 속에서 혼자 강하게 버티지 않아도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삶을 억세게 살아오면서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너무 여린 마음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 모두에게 김연지 작가의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