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지음

   누적 발행 250만부, 일본에서 2016년 연간 베스트설러 1위를 차지했다는 책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엽기적인 제목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책을 읽게 되었고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제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났다 최근 읽었던 책들 가운데 가장 눈물샘을 자극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것 같다. 무명이었던 저자가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눈에 띄게 하고자 이런 제목을 붙였고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후문을 들었을 때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제목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겠으나 동시에 제목 때문에 선뜻 읽히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막상 읽고나면 독자의 감정선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전혀 예상치못할 결과를 보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대상의 전부를 판단하려 하거나 자신의 선입견으로 대상을 대하며 사는지 모른다. 
   예쁘고 밝고 성격도 좋아 남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사쿠라’와 남들과 얽히는 것을 피해 스스로 외톨이로 오직 책읽기에 몰두하는 ‘히카리’의 특별한 우정은 우연으로 시작된다. 히카리는 맹장염으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사쿠라가 실수로 두고 간 ‘공병문고’, 일종의 투병일기를 보게 되었다. 이 노트에서 그녀가 가족 외 아무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남의 일에 무심했던 히카리 조차도 학교에서의 사쿠라는 항상 명랑 쾌활한 여학생이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사쿠라는 생의 남은 시간 동안 친구들과 자신의 병 때문에 슬픔과 불행한 마음으로 지내기보다는 사실을 숨긴 채 그들과 보통 때와 다름없이 지내며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우연히 비밀을 공유하게 된 히카리는 그 특유의 덤덤함으로 이 비밀을 받아들이고 사쿠라가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채우는 데 협력했다. 사쿠라의 버킷 리스트에 있던 일들을 그들은 함께 했다. 기차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그녀의 죽기 전 소망, 바람을 이루어 갔다. 사쿠라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괜찮은 척 가장해 왔지만 히카리 앞에서만은 죽음에의 두려움, 절망과 같은 감정을 솔직히 토로할 수 있었다. 히카리는 사쿠라와 웃고 떠들면서 본인이 갇혀있던 외톨이 껍질 속에서 비로소 나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에 눈뜨게 된다. 그러면서 평소 사쿠라와 가까왔던 다른 이들을 제쳐두고 어느날 우연히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짧고 귀한 시간을 차지해도 되는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우연은 그냥 우연일까? 
   사쿠라는 우연은 없다고 한다. “우린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와 내가 같은 반이 된 것도, 그날 병원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야, 운명 같은 것도 아냐. 네가 해 온 선택과, 내가 해 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한 거야.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만난 거야"  
 정말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우연이라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나와는 무관히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순간이 있기까지 의지적이든 습관적이든 수없는 내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연이나 운명이라는 예측불허의 일들, 불가피한 일들에 조금 더 능동적, 선택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시한부의 마지막 몇 달을 보내는 사쿠라가 투병과 죽음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비극적인 자신의 운명을 이런 책임감으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슬픔에 젖어 있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스스로 선택한 모습과 하고 싶은 일로 채워가는 용기도 마찬가지이다.     
  몇 달 안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슬픈 현실의 주인공 사쿠라는 장기 입원에서 퇴원한 날, 히카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골목 한켠에서 뉴스에서만 보던 묻지마 살해를 당함으로써 짧게 예정된 삶을 더 짧게 마감했다. 충격을 딛고 고인의 집에 찾아간 히카리는 사쿠라가 그에게 남긴 “공병노트”를 읽게 되었다. 거기에는 실은 히카리가 사쿠라에게 하고싶었던 말, “난 네가 되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그들만의 고백이 있었다. 서로의 안에서 살고, 영혼을 나누고 싶은 마음의 절절한 표현, 불가능 했기에 더 간절하고 절실했던 고백의 말이었다. 여기서 소설 속 히카리도, 독자들도 울게 된다.
   너무도 생경하고 엽기적이라 의구심을 주었던 책 제목이 결국은 독자의 감정선을 폭파시켜버릴 줄은 몰랐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다시 되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한 곳에서도 장황한 미사여구를 찾을 수 없었던 지극히 평이한 문체와 신파적 요소를 다분히 담고있는 소재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가벼워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 담고있었던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우정, 각자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존재로 설 수 있는 동력이 되는 사랑을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