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은 고려 충렬왕 때 추적이 중국의 여러 경전을 토대로 엮은 책으로 한국인의 의식과 긍지와 품격이 담긴 우리의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편저자의 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이와 같이 평가한다. “명심보감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바로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해 주는 책이다.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책으로 마음을 밝게 가꾸었고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차례대로 거슬러 올라간 모든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이 책으로 마음을 닦았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한국인의 의식과 긍지와 품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대가 가장 확실한 한국인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대는 세계 속의 세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문화방송의 예능프로인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출연자 이영자와 그녀의 매니저의 방송내용은 웃고즐기는 예능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그 내용은 두 사람이 마음 속의 고민을 나누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어려움을 토로한 것은 인간관계였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사람간의 관계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아 서점에 있는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이 무용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도 한 해 두 해를 보내면서 인간관계가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시인 이규호의 에세이 명심보감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도 5장은 입교, 치정, 치가, 안의, 준례, 언어, 교우, 부행편으로 구성되는데, 치정편, 언어편, 교우편이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 오랜기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나에게 진로에 대하여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친구의 입장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나는 사실을 조언해 주었으나, 그 친구의 반응은 내 기대와 달랐다. 나는 진심으로 친구에게 아는 대로 조언을 해주면, 친구가 고마워할 줄 알았으나 그 반대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나에게 할 수 있느냐라는 반응이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듣기에 좋은말, 이를테면 달콤한 말은 예로부터 간신배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에게는 듣기에 불편한 말들도 서슴없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조언이고, 좋은 친구일 것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듣기에 달콤한 말을 해 주지 않으니 서운하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을 고쳐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명심보감의 5장 언어편의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다편을 읽고 나니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는 듯하다.

   연산군은 충성스런 신하들이 자신에게 바른 말을 하자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며 몸을 죽게 하는 도끼이다라고 새긴 패를 가슴에 차고 다니게 했다. 그러나 김처선이라는 충직한 환관이 죽음을 각오하고 충언을 하자 그에게 활을 쏘고, 입에서 계속해서 바른말이 나올 때마다 다리와 팔을 하나씩 잘라버렸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자 그의 시체를 호랑이 우리에 던졌다. 이러한 사례를 두고 작가는 미국의 시인 휘트먼의 말을 인용한다. “최선의 일을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항상 최선의 일을 말하지 않고 두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작가가 휘트먼의 말을 인용한 것에는 다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첫째, 독자들로 하여금 말의 무서움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책에도 나와 있는 문장인데, “말은 감정을 움직이게 하고 감정은 흥분을 고조시키며 흥분은 또 지체 없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격해질수록 과격함을 더해 간다”. , 말이라는 것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긍정적인 행동을 유발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청자의 수준을 고려하여 말을 하라는 것이다. 연산군이 만약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과 같은 성군이었다면, 자신에게 충언을 하는 신하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 자체가 충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도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요, 그의 화를 돋구기만 하는 불쾌한 성질의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영국의 시인 사우디의 말도 함께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두 번째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속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가려지도록, 언어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사회 생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은 다 똑같은 그릇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의 그릇은 상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릇이 큰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말을, 작은 사람에게는 때로는 필요한 말이라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배려라는 것도 이러한 지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받아들일 능력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내 입장에서 좋은말이랍시고 말을 한다면, 상대에게는 그것이 때로는 폭력이라고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다시말하면 좋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유지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을 하거나 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