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도 Dec 04, 2018 14: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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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_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모호한 제목을 가진 책들은 일반적으로 그 의미가 책의 서두에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책은 막바지인 3부에 들어서야 그 모순된 뜻을 이해하게 된다. 결론적으론 미래를 준비할 땐 그 나라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비롯한 문화 전반을 반영해야 한다는 뜻의 제목이다. 첨단 문물을 통해 손쉽게 미래를 준비하려는 현시대의 흐름과는 맞지는 않는다.

   책의 배경은 인도의 라다크라는 지역이다. 히말라야 인근에는 외부와 다소 고립된 몇 지역들이 몇 있는데, 척박한 토양과 기온차가 심한 기후를 가진 라다크도 그 중 하나다. 자연적인 열악함뿐만 아니라, 교육제도, 의료시설 등의 복지라든지 전기, 수도, 난방과 같은 기본 시설조차 열악하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이에 적응하여 살고 있고, 실제로도 뛰어난 공동체 의식과 신앙심, 그리고 자신감으로 행복지수가 높게 조사된다고 한다.

   자연을 이용하여 평화롭게 자급자족하던 그들에게 서구의 진보된 문물과 합리적 시스템이라는 상자가 배달된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질 수 있고, 먹거나 입을 것을 더 빠른 시간에 더 편리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었다. 유혹 당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보리를 농사짓고 수확한 뒤 반죽하여 보리빵을 만들어 먹는 것 보단 방문객이 보인 완성된 인스턴트의 유혹이 달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만들어 먹는 보리빵의 경제적 가치와 인스턴트가 본인들의 건강상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이다. 넓게 보면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겪는 환경 문제, 믿을 수 있는 식품, 빈부격차,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으며 산다는 것 또한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많은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화 속에서 무분별한 문화와 물품을 수입했고, 전통문물에 대한 자부심은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했다. 그리고 메이드 인 USA를 외쳤다. 지나친 문화 사대주의가 불러온 폐해는 우리 일상에도 깊이 침투하여 삶 전반에 깔려있다. 서구에서 불어온 물질 만능주의의 바람은 우리를 휩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해 현재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서구 문물이 한 지역을 침투하는 몇몇의 과정은 본 책에 잘 나타난다.


자부심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기 이전에는 자신들이 문명화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굳이 전기 같은 것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개발의 영향력은 짧은 기강 동안 사람들의 자존심을 침식해버렸고 그 결과 전기는 말할 것도 없이 펀자브 지방에서 생산된 쌀이나 플라스틱 제품들까지도 그들의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나는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소용없는 손목시계를 자랑이라도 하듯 손목에 두른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서구의 교육 시스템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유의 환경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이용하라고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해서 인위적인 결핌 상황을 만드는 한편 사회 구성원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확인한 저자는 반개발 운동을 시작한다.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무분별한 개발이 본인들에게 돌아올 심각한 문제에 대해 경고한다. 그들의 삶의 아름다움이 밀려드는 서구 문명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반개발 운동을 통한 그들의 지향점을 언급한다.

   실제 이러한 운동이 필요할까에 대해서 의구심이 든다면 이는 어쩌면 자본주의로 물든 세상에서 태어나고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편리함과 물질적 가치가 삶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선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과 선택이 상당히 제한된다.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지만 물질의 소유를 멈출 수 없는 구조이고, 성과 위주의 경쟁주의에 혀를 내두르지만 기꺼이 대열에 합류해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연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친환경적 느린 삶을 찬양하지만 바쁜 삶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에는 소극적이게 된다.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새 문물의 침투가 진행 중인 라다크와 같은 곳이라면 공존의 노력을 시도할 필요성이 있다.

    예전 우리나라도 농작물 수확량이 많아 잡곡이 비교적 저렴했다. 그 자리를 쌀과 밀가루가 대체하고 수입산이 늘어가자 농업 비중은 줄어들어갔다. 더 나아가 이젠 건강을 위해 잡곡을 먹거나 첨가제가 없는 국산 밀가루를 먹으려면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한다. 최근 과일들도 그렇다. 수입과일이 훨씬 흔해지고 식탁에도 자주 오른다. 결과는 뻔하다.

   한편으로 우리는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며 핸드 메이드 제품의 가치를 안다.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복잡하고 이기적인 이 시대에서 다가올 미래를 건설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바람직한 자세를 유지하기가 그저 쉬워보이지만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