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선 Dec 04, 2018 17: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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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가늘고 긴 비행운이 남는다.

어렸을 적 비행기를 처음 타본 때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과학고등학교라며 일반 고등학교에 다는 학생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하던 우리 고등학교는 그해 처음, 해외로 수학여행을 보내줬다. 해외라고 해서 누구나 가고 싶어했던 유럽이나 미국등의 먼 나라는 아니었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간다는,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그 설레임과 불안감에 가기 전 몇 일 동안이나 긴장해서,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코에서 피를 흘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하지만 분명히 남아있다.

1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나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갈 일이 있으면 별 생각없이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담는다. 왜 이렇게 좁지, 옆좌석 사람은 왜 이렇게 냄새가 날까, 왜 자꾸 옆사람은 나한테 어깨를 부딪히지 같은 시덥지 않은 불만과 함께. 공항에 발을 들이민 첫 순간의 설레였던 감정들은, 이번 비행은 또 얼마나 걸리려나 하는 걱정들에 이미 색이 바래버린지 오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른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까지, 이런 비스무리한 경험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꿈과 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 조금 더 가면, 내가 가지고 싶어하는걸 집으면,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가면, 대학원에 가면, 내 생각대로, 내 설레임대로 내가 꿈꿔왔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들은 그렇게 익숙함으로, 생각했던 것 과는 달랐던 현실의 실망감으로,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보잘 것 없었던 내 자신의 대한 절망감으로 덮여지며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비행운'에는 현실에 안주할 정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다른 세계를 꿈꾸고 동경하지만 결국 바래지고 가라앉고 마는 여덟가지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것들은 믿고 사랑했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의 이야기이며, 홍수 속에 어머니를 떠내려보내고 자신조차 떠내려가라고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집안에서 버려지고 아내가 암으로 사망한 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소설인 '서른'에 그려지는 '강수인'의 인생은 조금 더, 아니 조금 더 많이 비참하다.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한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플롯으로 작성된 이 소설에서 수인은 꿈꾸던 J 대학의 프랑스어 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수인이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어 학과는 학생 미달로 폐지될 위기해 처한다. 겨우겨우 대학을 졸업한 수인은 조그만 학원의 강사로 들어가, 자신도 잘 모르는 한문 과목의 강사로 취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예전에 사귀었던 한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의 어설픈 꼬임에 넘어가 다단계에 갇힌다. 배고픔과 절망 속의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대신할 희생자를 찾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희생자는 그녀가 선생님이었을 때 그녀를 가장 잘 따르고 좋아해줬던 여제자였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는 그 제자의 소식을 듣는다. 자살기도를 했단다. 결국 살게되긴 했는데,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고 한다더라..

'서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다.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
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찌하면 좋을지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제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언니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무얼 하면 좋을까요.
...
언니, 저를 기억해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제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 그럴 얘기를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 잘 지내요, 언니. 언니가 정말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또 쓸게요, 언니.

혈기왕성했던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까마득하지만 그래서일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노벨상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그 '상'의 의미가 그때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에게나 내 성과에 대해 인정받는것, 누구나가 우러러볼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낸 것에 대한 최고의 보상 정도였을까. 그런 성과와 우러름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 상에 대한 동경은, 내 미래의 삶에 대한 동경의 빛이 바래가면서 시들어갔다. 연쇄작용으로,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내서 주목받는 교수, 기발한 아이디어로 몇 년만에 수십억을 번 벤처 창업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최고위직 공무원과 같은 찬란할 것만 같은 타이틀들이 사실은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그들의 이름으로 남겨진 결과들이 신문에 한줄 실리고 역사책에 한 줄 남겨진다 한들, 이토록 미래에 대한 동경마저 사치인 하루의 현실을 버거워 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다행히도 대신 다른 목표가 생겼다.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고, 역사의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인생과, 인생과 연관된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이겨내며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동경해 왔던 미래를 잡기 위해 팔을 휘젓다가 지쳐가는 사람들이 조금 쉬면서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리고, 어떤 때는 좌절하고, 어떤 때는 또 다시 일어나면서 인생이라는 길을 달려갈때 같이 뛰고있는 옆사람을 보고 말 한마디 건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비행기가 남기고 간 비행운은 이내 사라진다. 손에 잡힐 것 같은 다른 세계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짓말같이 깨끗하게 사라져버린다. 미래를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싣은 이들의 설레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식어 버리고 좁은 좌석의 짜증만이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미래를 동경하고, 또다시 실망한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동경해야 될 순간은 장미빛 미래가 아닌 거지같은 바로 지금, 이 현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