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 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등으로 친근하게 다가와서 

옳고 그름의 정답보다도 더 깊은 철학적 사색을 하게 해주는 혜민 스님의 훈계 아닌 공감은 매번 나를 성숙하게 한다

공대를 나와서인지 수학적 논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어떤 것을 바라볼 때 항상 해답을 찾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버릇처럼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무엇인지 저울질 하게 되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나에게는 어쩌면 최단거리로 가지 않는 사람은 비효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멈추어야 비로소 보인다는 역설에 논리적인 정답보다도 깊은 곳에 있는 철학적인 사색이 

나의 메마른 생각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느낀 적 있다.

 

 혜민 스님은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서 우리가 힘들고 지치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의 고요함을 잃어버리고 살아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소란한 광고, 사건사고 뉴스, 자동차 경적 소리, 공사 소리, 그리고 핸드폰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까지 

우리의 영혼을 가만히 쉴 수 없게 하는 것

그러다 보니 자기 소외 (Self-alienation)에 빠지게 되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바쁘게만 살아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종국에는 내가 지금 무슨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겨를이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나를 잃어버렸을까? 반문하게 된다.

 

 반문의 끝에 나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스님이 고요할수록 밝아진다는 선뜻 알기힘든 말로 운을 떼었는지 어렴풋이 깨닳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내 모습은 아침에 보고 나온 거울 속의 내 얼굴이고, 이는 남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다

내 삶은 남에게 보여지는 부분을 신경을 쓰고, 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지 시간이 많이 흘러 나 또한 나를 떠올릴 때 남이 나를 쳐다보듯이 

나의 지금 실적, 외모(살이 얼마나 쪘는지), 경제 상황 등을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남이 나를 보듯이 말이다

진짜 내 모습은 거울에 낱낱이 비춰지고 있는 내 얼굴껍데기가 아니라 불을 꺼버렸을 때 느껴지는 나일 것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알맹이

내가 진짜로 하고싶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제서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나 스스로에게 너무 멀리 왔다고 그래서 이젠 내가 하고싶은 대로만 살수는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까봐 

조금은 겁이 나지만, 이렇게 철학적 사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지금 무슨 느낌을 느끼는지 참 오랜만에 느껴봐서 좋았다.